한백봉은 광주군 돌마면 율리에 살던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입니다.
한백봉은 1919년 고종황제의 장례식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다짐하고, 돌마면에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의 소식을 전하고, 율동의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한순회, 유창석 등과 함께 몰래 우리나라 국기를 만들었으며, 낙생 면장 남태희와 함께 연합시위를 계획하고 분당리 장날에 만세운동을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윽고 3월 27일, 분당리 장터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28일에 돌마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낙생면 판교리에 이르렀을 때 참여한 사람이 3,000여 명이나 되는 큰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 안에 있던 일본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무리가 흩어지게 되었고, 한백봉은 시위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3월 29일에 체포되어 판교헌병주재소에 끌려간 후,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광주분견소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4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고 1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후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을 거쳐 서대문감옥에 들어갔고, 1920년 4월 28일에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한백봉은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으며, *신간회 광주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한백봉은 성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분으로, 그의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에 있습니다.
*신간회: 민족 운동을 합쳐서 함께 하기 위해 민족주의 무리와 사회주의 무리가 1927년 함께 만든 민족 운동 단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